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정점을 찍는다는 것.

내가 어떠한 행위를 한다고 했을때 그 행위에 높낮이를 떠나서 내가 명확하게 해야할 것은


바로 정점을 찍는 것이다.


정점이라는 것은 세계최고 ,국내최초 그러한 멍청하고 쓰잘데기 없는 수식어가 붙는게 아니라(그이룬 사람들을 비하하는게 아니라, 마치 세계최고,국내최초가 아니면 안된다는 그러한 마음가짐)정말 자신이 얼마만큼 집중해서 무언가를 할수있느냐를 말하는 것 이라 볼수있다.


만약 내가 어떠한 것을 이룬다고 했을때에..

그것이 하찮은 청소나, 물걸레를 쓰는 것 이라고 하더라도.


그것 자체가 내가 위치한 이곳에서 사람들에게 건강하고 행복한 무엇인가를 만들수 있는 구조라면.

그하루는 세계최초,국내최고만을 칭하는 사람보다 훨씬 가치있는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구조가 성립될려면 몇가지 전제조건이 펼쳐져야 하는데


첫번째로, 그것을 볼수있는 눈이 있어야 한다.

즉 다시 말해서 그것을 볼만한 인사이트를 가져야 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관심을 가져야 한다.


두번째로,그것이 반드시 나의 물질적인 가치에 대한 보상과 연결되선 안된다.

내가 당장 청소를 한다고 내 월급이 올라간다?

내가 당장 정리를 한다고 해서 내 실적이 올라간다?


하지만 내가 이것을 하나 마치게 되면, 내 내면에서 무언가를 정점을 찍었다는 역사가 될수가 있다.


그리고 이 정점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은 반복되는 행위만 하게 된다면.

그것만으로 나는 창조를 이룬 것이다.


즉 창조라는 것이 無에서 有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관심을 갖고서 , 그 관심에 사랑을 더해서 실질적으로 행동을 하느냐 이다.


여기있는 작은 물건을 저길로 옮겼 다는 것 , 그것도 하나의 창조이다.


왜냐하면 관심과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밥 못먹은 후배직원에게 김밥한줄을 사다주는것, 그것도 하나의 창조행위이다.


그렇게 보면 꼭 창조행위라는 것이 돈과 연결되는것은 아니라는 것이 느껴진다.


어떠한것에 관심이 있고 그것에 사랑을 느낀다면, 그리고 그 행위가 모두가 건강하다는 것 그자체에서

우리는 사랑을 느낄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현대 사회에서 특히..

느끼는 대부분이 바로, 어떠한 A라는 행위가 나온다고 했을때 , 그것이 반드시 돈이나 실질적인 이익과 연결시키려고 하는 경우가 참 많다고 본다.


즉,막말로 돈되면 안되고, 나한테 이득이 안되면 안한다.


본질적으로 봤을때 어떠한 행위라는 것은.. 

결국에  -누군가에게 관심을갖고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해지면 그것 자체가 창조행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