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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철학

불안감에 의한 자동적인 바보노력

두치입니다 갑자기 글감이 머릿속에서 떠올라서 저도 모르게 컴퓨터 키자마자 글 쓰려고하네요

요즘에는 글 쓰는게 다른 어떤 취미보다 재밌어져서요 ㅎㅎ

공감하시면 공감하시는 데로 좋구 ,공감이 안가면 "아 저런 사람도 있구나"라는 넓은 관용으로 읽어 나가주셨으면 합니다.

 

 

사실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에서는 분명히 관계에 대한 힘에 차이가 존재한다.

그것은 비단 그것 자체로 무엇을 하려는 마음에서 기인하는것이 아닌 그냥 인간이란 존재자체가 그러한 행태를 띈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러한 무엇을 하려는 마음 자체가 인간이 타고난 행태라고 보는게 옳다.

간단하게 말하면 어쨋든 인간은 어떤 인간이든 그 마음속에서 관계를 재나가는 방식을 택한다.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인간이 그렇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만났는데 자신의 눈으로 보기에 조금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어떤 사람은 그사람을 무시할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그 사람에게 동정어린 눈빛으로 쳐다볼수도 있게 된다.

그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은 갖지만 그것을 바라보고 나서 취하는 행태는 다 다르다.

결과가 다르다고 해서 원인조차 다르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 원인 이라는게 결국엔 각기 다른 인간들이 인간으로써 보여주는 차별화된 결과를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중요한건 그 원인이 중요한게 아니라 그 원인은 받아들이는 나라는 사람이 중요하다.

 

어떤 누군가는 똑같은 상황인데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만의 색깔을 가지고 행동을 하게 되고

다른 누군가는 똑같은 상황인데도, 휩쓸리고 흔들리고 초조해하고 불안해하게 마련이다.

 

이 모든것에 기반은 그 사람이 상황을 해석하는것이 다르다고 말하는것이 옳지만,그것보다 더 중요한것은

그 사람이 다른사람의 관계에 있어서 자신이 철저히 힘에 차이에의해서 낮다고 느껴지기에 반사적으로 굽히게 된다.

 

예컨대 회사면접자와,구직을 하는 사람들의 관점에서 보게 된다면 그 둘이 나이가 몇살이고,어떠한 분야에 있고, 남자고 여자이고를 떠나서 힘에차이는 극명하게 나누어져 있다.

이것은 말할것도 없이 그냥 그 관계만 봐도 아주 명확해 지는것이다.

 

구직자는 자동적으로 몸을 숙일수 밖에 없는것이고, 면접자는

1.자신의 위치에 의해서 고개를 꽂꽂히 들으면서 당당해지고

2.그러한 몸을 숙이는 면접자에 모습을 보면서 더 꽂꽂해진다.

3.그러한 꽂꽂해하는 면접자에 모습을 보면서 구직자는 더 고개를 숙이고

이러한 흐름은 계속되서 더욱더 둘의 관계를 극단으로 몰고가게 된다.

 

 

 

그렇듯

구직자가 면접관에 위치와 비슷한, 면접관에 눈에 들어찰만한 무언가를 갖지 못한다면

면접관과의 관계에 있어서 틀어질수 밖에 없게 되는것이다.

 

그럼 왜 면접관은 힘이 있고, 구직자는 힘이 없는 것일까

그것또한 단순하다

면접관은  구직자가 원하는 그 무언가를 손에 쥐고 있는 사람이 분명하고

구직자는 그러한 면접관에 손에 의해서 자신의 가치가 판명되어지는 사이이다.

 

그러나 이러한 면접관이 면접관을 하다보면 계속 그런식으로 고개를 꽂꽂히 들고 분석을 하려는 습관이 들게되고 구직자가 이런식으로 굽히다보면 계속 굽히게 된다.

단순히 그러한 관계에 의해서 사람들이 판명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관계에 의해서 역학적으로 고착되는 사람의 그 모습자체가 그 사람의 모습이 된다.

 

노예는 계속해서 노예짓을 한다, 심지어 자신이 주인에 위치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노예처럼 행동한다.

주인은 계속해서 주인짓을 한다, 심지어 자신의 노예에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인에 입장에서 두가지로 나뉜다.

그러한 현실자체를 받아들이기 싫어서 무단히 노력하는 노력하는 주인

반대로 그러한 현실자체를 그냥 받아들이는 노예화 되가는 주인

 

 

잠시 삼천포로 빠졌는데 좀더 명확히 해야 하는것은 이러한 인간의 무의식적인 행동에 있어서 반드시 생각해 봐야하는것이 무엇이냐하면..

 

서로와의 관계에 있어서 인간은 무엇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역학적 관계가 훤히 들어나게 된다.

그것은 다시 생각해보면 이미 주는사람과, 받는 사람의 관계가 아주 명확하게 나뉘어 졌다고 보게 되는 것이고,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결국엔 주는 사람의 손아귀에서 절대 벗어날수가 없는 것이다.

여기서 또 생각해 봐야 할 문제는 그러한 관계에 있어서....

받는 사람은 철저히 아주 철저히 그러한 관계를 유지시키고자 불안감에 의한 자동적인 바보짓을 하게 된다는점이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생각하는 단순한 구조에 의해서는 자신이 어떠한 행동을 하는것이 그러한 상황을 바꾸려는 미약한 기대심리가 동반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 그 상황을 자신이 바꾸려는 그 심리 자체가 이미 그사람은 노예가 된것과 다름없다.

 

월급을 조금더 올려받으려고 노력하는 직원의 모습인 것이고, 누군가 에게 칭찬을 받고 싶어하는 사람의 모습을 보이는 애정결핍의 사림일수도 있고, 빵 하나 더 먹고자 노력하는 배고픔에 굶주린 노예의 모습일수도 있다.

 

즉 자신이 바라는 것이 상대에게 있다는 것을 자신이 인정해버리고, 조금이라도 분위기가 틀어지게 된다면 그것을 얻지 못한걸 같다는 불안감에 의해서,어떻게든 상황을 바꿔보려고 노력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여기서 조금더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된다면.

그러한 노력이 문제가 아니라.

 

과연 그러한 노력을 내가 할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 문제이다.

즉, 왜 나는 상대방에게 원하는게 분명히 있다는 것에 대한 물음이 그것이고, 반대로 상대방은 그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나란 사람은 계속 흔들리게 되는것이고, 상대방이란 사람은 계속 단단해 지기 마련이다.

 

나란 사람은 불안감에 떨게 마련이고, 상대방은 그런 불안감을 떠는 작은 강아지를 보면서 먹이를 줄지,다른곳에 입양을 시킬지,그냥 쳐다볼지에 대한 그러한 면접관에 위치에서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시작과 동시에 결정되어진 모습이라고 볼수있다.

왜냐하면, 사회적인  상황의 모습으로 봤을때 사람간의 관계가 반드시 1:1의 동등한 교환의 형태

(내가 어떻고,다른 사람이 어떻고,여기가 어떻고,그말을 하기 이전에)

한명이 절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러한 분명히 불리한 위치에 있는게 분명하다는 것은

그러한 위치에 의해서 서로가 관계가 형성된다는 것 그 자체가 오히려 그 둘간의 관계가 간단히 역전이 될수도 있다는 것을 뜻한다.

 

분명히 말하지만 사회적인 상황,절대적인 비율,그 밖에 다른 요소에 의해서

한쪽은 다른 한쪽에 비해 굉장히 불안정하고, 불편한 위치에 있는게 자명하다.

 

허나

그러한 모든 요소를 감내하고 서로가 같은 장소에 있다는건, 그것을 깨닫게 된다면 사실 그 둘의 관계는

힘이 없는 사람이 힘이 있는 사람이 되고, 힘이 있는 사람이 힘이 없는 사람이 된다.

 

왜냐하면 구조적으로 힘이 있는 사람이 힘이 없는 사람과 어깨를 나눈다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에서

힘이 없는 그 한 사람을 택함으로써 의미화 시켜버린것이 분명한것이고,(힘이 없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같은 자리에 와있다) 힘이 없는 사람에 입장에서 보게된다면 이미 힘이 있는 사람과 같은 자리에 있다는것 그 자체만으로 상대가 사회적으로 갖고있는 힘을 어느정도 빼앗아 온것일수도 있다.

 

잘 생각해봐라.

각각의 특성상 이미 우열을 정해져 있다. 그러한 정해진 우열의 관계에 있어서

힘이 더쎈 사람이 (물리적인 힘,POWER가 아닌)힘이 약한 사람과 있는 다는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오히려 자신의 힘을 낮추고, 힘을 맞추려는 그 노력 자체만으로 둘의 관계는 이미 역전되어 있다는게 아주 명확하다.

 

이러한 생각을 머리속에 갖고 있다면 우리가 해야할 것과 그렇지 못한것에 대해서만 하면되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의 행동의 양태를 생각해보자면 다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받는 사람은 철저히 아주 철저히 그러한 관계를 유지시키고자 불안감에 의한 자동적인 바보짓을 하게 된다는점이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생각하는 단순한 구조에 의해서는 자신이 어떠한 행동을 하는것이 그러한 상황을 바꾸려는 미약한 기대심리가 동반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 그 상황을 자신이 바꾸려는 그 심리 자체가 이미 그사람은 노예가 된것과 다름없다.

 

 

우리는 상대방에게 무엇인가를 얻을려고 하는 그 마음,그 노력, 그 관성에 아주 익숙해져 버렸다.

정확히 말하면, 항상 바라는 사람의 마음이고 그렇기에 졸라게 관심을 끌려고 하고 그러한 관심을 끌려는 모습 자체가 상대방에게는 오히려 안 좋은 모습으로 비춰지는것 뿐 아니라

 

애써 얻었던 상대방이 자신의 몸을 낮추면서 힘에 크기를 맞추려는 그 노력자체를 수포로 만들어 버리게 된다.

 

즉,자신은 그러한 상대방이 힘을 낮추는것에 대해서 익숙하지 못하기에 의미없는 노력을 계속 하는것이고,

그러한 의미없는 노력을 계속 하는 모습을 보면서 상대방은 다시 자신의 힘을 높히게 된다

"음 내가 힘을 낮추지 않아도 알아서 받뜰어 주는구만, 다시 돌아와야지"라는 생각이 들게 되는 순간 서로는

어색해지면서 다시 힘에 균형 자체가 무너뜨려 진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약자는 더 열심히 노력하려고 하고,어짜피 망가진 둘의 관계는 끝을 모르고 떨어지는 모습이 보이게 된다.

그리고는 그 사람은 다시 혼자 되새긴다.

다시 혼자 자신만의 울타리에 빠져들게 되고, 자신은 안된다고 아우성 친다.

그러나 그 사람은 분명히 발전한 사람이고 아직 겸손한 마음인지,멍청한 마음인지 자신이 위치를 인정안하고

다시 예전에 자신으로 돌아가려는 행태를 보이게 되는 것이다.

 

바보짓 하지말고, 자신의 지금의 상황을 역학적으로 분명히 분석하는 그러한 관점을 갖는것이 중요하다.

아주 보편적인 현상에 이면에는 서로가 서로에게 힘을 전달해주는 그러한 과정이 숨켜져 있기

때문이다.

 

무조건 적인 노력이 답이 아닌 이유는, 물리적인 변화 이외에도,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있어서 분명한 변화가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이전의 자신으로 돌아가려는 그러한 막연한 습성이 되살아 났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떠한것을 노력하려 하지말고, 그 상황 자체에서 어떻게 하면 상대방의 기분을 나쁘지 않게 하면서

가치의 교환이 이루어질것 인가에 대해서 항상 고민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사실 이러한 관점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발전하는 것이고, 그것을 역학적으로 분석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소유하지 않아도 되는(소유라는 것 자체가 꼭 유형의 무엇은 아님으로) 무기를 갖게 되는것과 진배없다.

 

 

발전해나가고 기록해 나가자 그 기록이 나를 나아가게 해주고, 그 나아가게 해주는 것이 나를 더 높게 해줄것이고 그 높게 해주는것이 나란 사람의 위치를 만들것이고 그 위치가 나란 사람의 만들어낸 무언가가 특별해지게 될것이다.

 

 

세상이 나를 한정 지으려 할 때 이를 그냥 받아 들여선 안된다

젊음은 가능태 이기 때문이다-황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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