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차선 도로에서 횡단보도를 건너기보다
지하도를 통해서 반대편 으로 넘어가는게 낫다고 생각해서 지하도로 가게 되었다.
노숙자로 보이는 아저씨가 머리를 숙이면서 동전을 받고있었다.
마치 죄인 이라도 된 마냥,머리를 숙이며 깡통에 동전을 차기를 바라고 있었다.
걸어나와 계단을 가려는데 또 다른 노숙자로 추정되는 아저씨가 또 누워있었다.
마치 세상을 다 포기한듯 팔을 넙죽 펼치고 잠을 자고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면서 인상을 찌푸리고, 어떤 사람들은 동전을 던져주기도 했다.
그리고 아마 이런 생각을 했을것이다.
"공사장에가서 막노동이라도 뛰지"
"난 저렇게 안되야지.."
-예전 아는분이랑 대화를 하게 되었는데 그 분은 25살에 1억의 빚을 지셨다고 한다.
그 당시면 약 20년 전으로 지금의 1억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의 돈이다.
아마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5~6억 정도와 맞 먹을것이다.
그분이 해준 말이 머릿속에서 떨어지지가 않는다.
본인도 세상을 다 포기하고 노숙자가 되었다고 한다.
퀭한 눈, 주인없이 물컹한 사지,남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을만큼의 자존감의 부재, 내일을 생각하지도 할수도 없을만큼 막막한 미래,절망도 그것이 내가 감당할수 있어야 절망이지 그 이상이 되어버리게 된다면 마치 남의 일이라도 된듯마냥 허탈하고 인생자체에 대해서 더 이상 생각할수 없었다고 한다.
"손가락 까딱 하기도 벅찼어..." 그 분이 나에게 해주신말이 었다.
실패의 충격으로 던져진 현실에서의 절망은, 나태함이라는 새로운 생명체를 나았고
그 나태함 이라는 것은 이제는 더 이상 본인과 뗄레야 뗄 수가 없었다고 한다.
누군가 강제로 데리고 나오지 않는 이상 그 나태함이라는 것은 벗어날수가 없었고
본인은 친 동생이 데리고 나왔다고 한다.
나는 나의 친구가 이해가 안 될 때가 있다. 어떤 누구도 나란 사람이 이해가 안 될 때가 있다.
그 이유는 그 처한 상황,그 상황에 대한 대응, 그 모든것이 엄청난 변수가 있다.
그렇기에 사람들 사이에 오해가 생기게 되는 것이고, 그 오해는 이미 생기고 나서 부터는 더 이상
풀리기가 힘들다.
왜냐하면 감정이 쌓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다각적인 시각이 필요하다.
내가 누군가를 본다는 것은, 단순히 그 사람의 결과의 모습만을 본다.
그 사람이 왜 그럴수 밖에 없고, 그 사람이 어떤 환경에서 어떤 교육을 받고 자라왔고,
어떻게 대응하는지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 사람의 그러한 행동의 결과로써 우리는 하나 알수 있는 것이, 그 사람이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는 알수가 있다.
그렇게 사람들의 모습을 관찰해보고 그 사람이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이 세상에 모든일은 다 그럴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것이다.
나에게 힘든일이 닥친것도, 좋은일이 생긴것도 사실은 다 그럴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어떠한 일이 생긴것도 사실은 그러한 당연하 상황이라는 해석이 동반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극단적인 상대주의적 태도는 배척해야 된다.
그것이 바로 상대주의적 관점에 대한 맹점이다. 모든 사람을 그렇듯, 완전한 이해의 생각에서 또 생각하면 안된다.
그러나 보편적인 관점에서 사람들의 행동 자체가 당연하다고 생각되어 지고 그것을 그 사람이 겪어온 삶에서
이해하려고 하면
나란 사람이 담을 수 있는 사람의 숫자도 급격하게 늘어날 수 밖에 없다.
그것이 바로 사람을 담는 그릇이 된다.
사람은 모두가 다 자기의 관점에서 이해하려고 하고 생각하려고 한다. 그것이 사람이다
노숙자 아저씨도 다 그 사람의 인생에서 그럴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냄새난다고,나태하고 자신의 인생을 구하지 못한다고 손가락질 하기전에
그 사람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생각해 봐야 한다.
물론 이것이 개인의 의지 차이일수 있다. 그 사람이 정말 나태하고 게으르고 천성이 약해빠져서
그러한 상황에 놓일수도 있지만, 그것에 대해 함부로 말해서는 안된다.